제4회 개발의 날: 개인의 목표보다는 회사의 이익으로 초점을 옮겨보다

오랜만에 개발의 날을 가진다. 지난 달에는 결혼 준비로 주말이 너무 바빠서 건너뛰었고, 주말에 서너시간 정도 카페에서 개발 시간을 가졌다. 오늘은 원래 취지대로 하루 전체를 “개발의 날"로 지정하고 원하는 만큼 개발에 몰두할 수 있는 네 번째 시간이다.

먼저 이 블로그에 작성해둔 예전 글들을 다시 읽어봤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에 들어가기 직전에 개설했으니 반년이 조금 넘었다. 별로 오래 지나진 않았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개인적인 삶과 회사 생활 모두 만족스럽다.

요즘 생활

아래는 작년 10월에 적었던 생활 루틴이다.

입사 초기 생활 루틴

약 3달이 지난 지금도 100% 똑같다. 출근일에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6시에 일어나 헬스장에 다녀왔다. 체지방이 당시 20%에서 지금은 16%로 줄었다. 체중은 유지하고 있지만 체지방이 4kg 정도 빠졌다. 힘도 세지고, 몸매도 훨씬 더 보기 좋아졌고 얼굴도 당시보다 더 건강해보인다.

이 생활 루틴에 아주 만족하고 전혀 힘들다고 느끼지도 않아서 앞으로도 지속할 계획이다. 이번 달에 헬스장을 6개월 더 결제했다.

이렇게 하는 건 개인적인 건강 관리도 물론이지만 회사 업무에서 충분히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꾸준히 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회사 일을 잘 해내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회인으로서 우리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가장 기초가 되는 경제활동이기 때문이다. 와이프와도 사이 좋게 잘 지내고 있고, 결혼식도 올해 5월로 예정되어 있으며 키우는 고양이들도 모두 건강하다. 워낙 개발 일이 잘 맞다보니 업무 스트레스는 거의 없고, 덕분에 다른 취미를 가질 필요도 없다. 퇴근 후에나 주말에는 그냥 개발 책이나 보는 게 좋다.

회사 업무와 개발자 커리어와 관련한 요즘 고민들

최근에는 일기나 회고처럼 개인적이고 아주 사적인 내용을 기록해 둘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다. 클라우드에 저장이 되면서 여러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비공개로 유지할 수도 있어야 한다. 한 20년 뒤에도 망하지 않는 서비스 제공 업체였으면 해서, 그냥 github에서 private 저장소를 사용해서 기록해둘까 싶다. 이건 생각을 정리하고 자기 반성을 통해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이다.

의사 소통의 중요성도 생각해보고 있다. 나이 앞자리 4를 목전에 둔, 아무래도 옛날 사람인지라 상명하복에 너무나도 익숙하고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개인적인 생각은 묻어두는 편이다. 하지만 의사소통을 통해 개선하려는 노력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표현하지 않은 나의 생각은 타인이 알 수 없는 부분이고, 반대로 타인의 생각을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물론 개인적인 고민 중에서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또한 말하더라도 결과가 뻔한 것들도 있으며, 말했을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모든 걸 체념하고 악순환이 반복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안 될 일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떻게든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나가려는 노력은 해야하고 의사소통은 그것을 이루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업무적인 소망

잠깐 곁가지로 빠져서, 그래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자면 솔직히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지금보다 더 좋은 퍼포먼스를 낼 기회를 받는다. 그리고 충분히 능력을 발휘한다. 또 그에 걸맞는 보상(연봉)을 받는 것이다.

지금은 특별히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것 자체가 힘든 롤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많은 책임과 권한을 부여 받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본인이 책임과 권리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에 관한 고찰

한 때는 나도 개발팀을 이끌었다(고작 두 명으로 시작해서, 나중에야 겨우 다섯 명이 된 작은 팀이었지만). 하루 10억, 월 300억씩 들어오는 소액해외송금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했다. 경영자와 소통하고 개발팀 업무 관리하고, 금감원 상대하면서 소액해외송금업/전자금융업 라이센스도 취득시켰다. 나중에는 개발자 면접도 보고 채용에도 관여했다.

특이하고 웃기는 일이긴 하다. 신입이 뭘 안다고 저런걸 다 시키다니. 그래도 그게 좋아서 그 회사를 3년 넘게 다녔다. 충분히 감당해냈다고 생각한다. 회사는 성장하고 돈을 많이 벌었다.

퇴사하고는 새로 창업하려는 동종 업체로부터 CTO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에는 토스에서 먼저 면접 제외도 왔었다. 모두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CTO 제안을 받은 건, 처음에는 여러 번 거절했다. 4년차가 CTO를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최소 10년차 넘는 사람을 먼저 CTO로 채용하시고, 저는 그냥 팀원으로 뽑으시라고 말씀 드렸다. 그런데 연봉을 원래 받는 것보다 2배 가까이 많이 준다고 했기도 하고, 어차피 하라면 할 수 있는 업무였기 때문에 결국 수락은 했었다. 그런데 자금조달을 못 했다고 사업 자체가 엎어져서 모두 무산됐다.

나 자신은 어느 정도까지의 업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해왔던 업무에서는 모두 충분할 만큼 해냈다. 아직 한계를 느낀 적은 없다. 급이 안 되는데 떡하니 맡겨주는 경우는 좀처럼 없을 것이다. 실력 이상의 책임과 권한을 얻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운인 것 같다.

뭐 때문에 현재 처우에 불만족하게 되는지를 꼽는다면, 원론적인 문제로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첫 번째는 개발자 본연의 개발 실력 부족이고, 두 번째는 자기 마케팅 능력 부족이다.

자기 PR에 관해

나는 성향상 찐개발자고, 오로지 제품의 퀄리티를 중요시한다. 마케팅이라고는 할 줄 모르고, 개인 PR도 마찬가지다. 예전 회사의 소액해외송금 서비스를 평가하라라고 한다면 나는 장점보다는 단점과 개선해야할 사항부터 꼽을 것이다. 아무런 사고나 문제도 없이 3년 이상 운영한 사실이 있지만, 나는 그냥 코드 깎는 노인의 관점에서 바라볼 뿐이다. 나 같은 사람의 관점에서는, 서비스가 문제없이 잘 운영되는지 여부는 너무나 당연해서 말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마케팅의 관점에서는 그런 당연한 장점을 최대한 부각하는 게 맞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타인에게도 정확히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여태까지는 그러지 못 했다. 겸손이라면 스스로를 깎아내지 못해 안달일 정도니, 앞으로는 스스로의 점수를 마이너스로 책정하지 않고 적어도 0으로 말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다 알아주겠지 하는 생각은 오산인 것 같다. 무림고수는 자신보다 하수인 상대의 내공을 정확히 꿰뚫어 본다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만은 없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나를 정확히 평가하겠지, 이런 안일한 기대에 스스로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너무나 순진하다는 생각도 든다.

자기 마케팅이 중요한 순간이 분명히 오겠지. 그 때가 오기 전에 준비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 그래도 나 같은 타입은 과장해서 스스로를 포장하는 일보다는 실력 자체를 향상 시켜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 더 맞다. 자기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점은 새겨두되, 지금은 본연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기

솔직히 이건 회사도 아직 잘 모르거나 아직 고려 대상조차 되지 못 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존재하는 실체를 내가 찾아낸다기보다는 상호작용을 통해서 서로 조율해나가는 과정에 있을 지도 모른다.

이번에 회사에서 KPI 평가에 관한 오리엔테이션을 들었다. 들으면서 가장 크게 다가왔던 의문은 이렇다. 잘 하려고 의욕적으로 회사 생활을 하더라도 평가에 반영되지 못 할 수도 있겠다. 반대로 일 못하고 구멍처럼 보여도 평가 자체는 잘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완벽한 평가 시스템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한다.

본질을 배제한 채 오로지 평가만을 위해서 행동하는 것은 나 같은 성격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생각한 결론은 이렇다. 먼저 회사에서 나에게 부여한 롤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그것을 최우선으로 두고 일한다는 것이다.

내가 야망이 있건 말건, 그런 건 회사 입장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 회사는 여러 구성원들을 포함한 실체이며 개개인에 대한 고려보다는 궁극적인 회사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것이다. 나 한 명, 개인의 업무적인 욕망보다는 결국에는 회사의 요구에 먼저 부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게 됐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나는 소잡는 칼인데 불구하고 닭잡는 데 사용되더라도, 회사에서 나를 소소하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면 나는 그저 “소소 장인"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 과정을 의사소통을 거쳐서 잘 조율해보려고 한다. 먼저 노력은 해본 다음에 순응하려고 한다.

결론

그냥 월급 받으려고 회사 다니고, 업무는 웬만하면 덜 받고 싶고, 외부에서 문제가 제기되기 전까지는 다 묻어두려고 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해서 정 반대의 유형이다. 회사 생활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업무적으로나 업무 외적으로나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새벽에 운동도 꾸준히 다니는 것도 건강하게 최상의 컨디션에서 업무를 해내려고 하는 것이다. 퇴근해서도 업무에 영향을 줄 만한 활동을 하지 않는다. 술도 안 마시려고 하고, 업무 이외에 몰두하는 취미거리도 전혀 없다. 여유가 되면 개발 공부나 할 뿐이다. 이런 개인적 행동들이 회사에게도 충분히 이득을 주고, 그런 기여들이 정확히 평가받고, 또 궁극적으로 나에게 충분한 보상이 주어질 때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다.